본문 바로가기

神論 | 哲學

선한 사마리아인

반응형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적극적 구호활동을 장려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신분등에 따른 차별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마태복음 10장

사마리아인들은 당시의 유태인들에게 배타적 취급을 받던 이민족들이었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이는 유사이래로 일반적인 도덕적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의 종교가 무엇이던지 간에 당연시 되는 도덕률이다.

문제는 그 이웃이 누구인가에 관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이웃의 범주에 신분이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제한을 두지 않으셨거늘, 어째서 오늘날의 개신교는 그딴 근거없는 제한을 만들어 놓은 것인지 모르겠다.

기독교라는 그들의 틀 안에 있지 않으면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이 오늘날 개신교의 행태다. (이는 소수의 문제가 아니며 대다수의 문제이다. 그 소수가 워낙 다양하고 왕성해서 다수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사상과 기독교 사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신처럼 떠받들면서도 겉으로는 그리스도 사상과 정반대의 짓거리만 일삼으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슬람 지역에 가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그리스도의 뜻인가? 총칼 대신 막대한 자본을 가지고 선교를 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생각하는가? 천주교의 마리아상에 대해, 불교의 불상에 대해, 단군상에 대해, 장승들에 대해 우상화라 지껄여 대는 것은 또 어떠한가,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상인가, 개신교의 사상인가?


그리스도 사상의 핵심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선(善)이다, 사랑이다, 평화다.

나는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광신도들이 하루빨리 개과천선해서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개신교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그리스도를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신의 아들입네 하고 입으로만 믿지 말고 그리스도의 사상을 믿고 따르라는 얘기다.



덧.

어떤 개신교도는 말할 것이다,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그것은 과연 타인을 돕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천국에 가보려고 하는 얄팍한 수작인가.

위 이야기 속의 선한 사마리아 인을 보아라. 그가 행한 행동은 과연 천국에 가보려고 행한 행동인가, 아니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에 행한 것인가.



반응형